본문 바로가기
주저리 주저리/일상글

초등학교 동창생

by 비고미 2011. 6. 24.

어제 오후, 급한 약속이 있어 지하철을 탔다.

앉을 자리가 마땅치 않아 출입문 곁에 섰다.

눈을 감고 역 하나를 통과할 때다.

 

"신천역 얼마나 남았지?"

내 앞에서 제법 나이가 든 목소리가 났다.

그 물음에 다른목소리가 하나,둘,서이,너이...

하며 노선표의 역을

세어나갔다.  어딘가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나는 슬며시 눈을 떳다. 전철에 오를 때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던

사십대 후반의 두 남자였다.

 

모나지 않은 둥근 얼굴에 머리칼이

반백이다. 넉넉한 허리둘레 탓인지

인색한 데라곤 없어 보였다.


"동구는 지금 뭐한데?" "국민학교 졸업하고 여적 못 만났으니

모르지." 형제처럼 다정하게 묻고

대답하는 걸로 보아 초등학교

동창회에 가는 길인 듯했다.

 

신천역까지 가려면 갈아타야 하는 반월당역까지

여섯 역은 더 가야 하는데,

벌써 출입문 가에 선 걸

보면 마음이 설레는 게 틀림 없었다.

 

친구의 물음에 늘 대답을

하던 남자가 이번에는 안주머니에서 넥타이를 꺼냈다.

묻기만 하던 남자는 또 몇번이고 머리를 만졌다.

 

"넥타이  매는게 부끄러워서 말야."

 

넥타이를 다 맨 남자가 차창에 비친 모습을

보며 어색해 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초등학교 졸업한 지

30년은 넘었음 직한 오랜 격절감.

 

그 끝에 동창들을 만나러 간다는

건 부끄러울 수 있고, 설렐 수도 있을테다.

 

나도 얼마전 겪었기에 아는 사실이 아닌가.

 

"영순이 걔,  미장원 하잖아. 전번에 전화 왔는데

걘 온다더라.

그런데 윗동네 방앗간집 은정이,

걘 남편이 아파 못 오지 싶대."

대답만 하던 남자가 그간에 알고 있는 소식을 말했다.

 

"은정이, 걔 참 예뻤잖아."

묻기만 하던 남자가 말했다.

"예뻤지, 눈 크고 쌍거풀 지고...."

 

두 남자는 거기서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30년 전의 그 예쁜 은정이라는 여자애를

떠올리는 것 같았다.

 

나는 볼일이 있어 내렸다.

내리고도 전철이 떠날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설레며 가는 그들의 마음을

오래 느끼고 싶어서였다.

 

누구에게나 초등학교 동창들 중에는

예쁜 여자애가 있다.

 

지나간 유년의 친구 얼굴을 떠올리는 건 그래서

아름다운것 같다.

'주저리 주저리 > 일상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외계인은 지구를 구하러 올까  (0) 2011.06.24
크리스마스와 통금  (0) 2011.06.24
결혼식과 청첩장  (3) 2011.06.24
아련한 옛추억  (0) 2011.06.24
빨간 비아그라  (2) 2011.06.24
'몽유도원도'꿈속 이야기  (0) 2011.06.24
행복이란 멀리있는게 아니라 가까운곳에 있다.  (1) 2011.06.24
꼬깃꼬깃 비상금  (0) 2011.06.24
새벽 산행에서  (0) 2011.06.24
맘마미아 공연을 보고  (0) 2011.06.2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