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저리 주저리/일상글

크리스마스와 통금

by 비고미 2011. 6. 24.

12월도 벌써 끝자락 매년 이맘때쯤이면 구세군의 "땡그랑땡그랑" 울리는 종소리에 자선냄비에는

온정이 넘쳐나고 시내 레코드 가게 커다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경쾌한 리듬의 크리스마스

캐널이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는다.

 

이뿐만 아니라 서점이나 문방구의 진열장에 가지런하게 놓인 크리스마스 카드 또한 오가는 이의

눈길을 한참이나 끌어 당긴다.

 

옛 시절 청년시절로 잠시 돌아 가보자 손꼽아 기다리던 크리스마스 이브 날이 돌아오면 마냥 들뜬

마음에 일찌감치 몇몇 친구들과 어우러진 나는 북적거리는 충장로 우다방(우체국)을 향해 길을 나선다.

 

딱히 무슨 할 일이 있거나 볼일이 있어서는 결코 아니었다. 그날은 천원짜리 몇장을 넣은 호주머니에

양손을 깊숙이 찔러 넣고 많은 인파 속에 어깨를 부딪쳐가며 충장로1가에서 5가까지 비좁은 거리를

활보하듯 무작정 걸어도 마냥 행복했다.

 

이유인즉 당시는 시대가 시대인 만큼 매일 밤 자정이면 통금이 실시되고 있었으며 평소 때 친구들과

어울러져 술판이라도 벌일라치면 그 통금이란 것이 여간 성가시지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사회 초년병들인 우리 같은 초보 술꾼들은 누렇게 퇴색된 술집 벽면 위에 자리하여

"똑딱똑딱"시간을 헤아리는 둥글넓적한 벽시계에 목숨을 걸었다.

 

그런데 그리스마스 이브 날은 그 지긋지긋한(?) 통금이 없었다.그러다 보니 크리스마스 이브는 일년중

다섯 손가락에 꼽아 밤새껏 즐길수 있는 유일한 날이기도 했다.

 

따라서 무작정 거리에 나선 우리들은 때 이른 저녁밥에 자정을 흘쩍 넘겨 배가 고플라치면 포장마차에

서서 서너잔의 잔술과 싸구려 홍합탕을 안주 삼아 마시며 즐거운 기분에 호주머니를 툴툴 털어도 결코

아깝지 않았다.

 

이윽고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이 목젖까지 "쏴"한 소주를 담숨에 입안에다 털어 넣고는 마지막 남은

국물 한 방울까지 "후루룩"하는 소리 끝에 몽땅 비우고는 거리에 넘쳐나는 인파 속에 몸을 실어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운 기억은 이때쯤이면 나곤하여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게 한다.

 

이제 크리스마스가 며칠 남지 않은 올 한 해에는 참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난것 같다.경기 침체로

인한 취업난이 그러하고 "신종플루"가 창골하여 무고한 인명을 앗아간 것 또한 그러하다.

 

하여 기축년의 복잡하고 다사다난했던 서러운 사연들은 서리서리 간직하여 밑거름으로 삼고 희망찬

경인년과 주님의 은총이 가득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우리 장초 친구들의 가슴속에 품은 뜻을 활짝

펼칠수 있는 명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주저리 주저리 > 일상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느자구  (0) 2011.06.24
거짖말 탐지기  (0) 2011.06.24
니나놋집과 대폿집  (0) 2011.06.24
조금후에 읽어 보세요  (0) 2011.06.24
외계인은 지구를 구하러 올까  (0) 2011.06.24
결혼식과 청첩장  (3) 2011.06.24
아련한 옛추억  (0) 2011.06.24
빨간 비아그라  (2) 2011.06.24
'몽유도원도'꿈속 이야기  (0) 2011.06.24
행복이란 멀리있는게 아니라 가까운곳에 있다.  (1) 2011.06.24

댓글